공지사항

2015. 12. 2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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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의 주말 날씨는 연인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맑고 따스하기만 했다. 어제만 해도 소나기성 비가 여러차례 내려 희정은 상일과의 약속이 취소될까봐 내심 걱정을 했는데, 날씨가 맑아 아침부터 기준이 좋아 있었다. 그래서 오후의 약속이건만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고, 결국 약속 시간을 고려해 출발해야 하는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왔다.


"희정아 어디가니?"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떤 희정에게 학교 친구인 미희가 다가오며 말했다. 미희는 한 동네에 같이 살면서 고등학교때 부터 알게된 친구였다. 미희는 가까운 곳에 가는지 간편한 옷 차림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약속이 있어서 넌?"


"응. 엄마 심부를 가는 길이야. 근데 이쁘게 차려 입었다?"


"뭘..."


"혹시 상일 선배 만나러 가는거니?"


"응..."


희정은 얼굴을 조금 붉히며 대답했다.


"아무튼 보기 좋다 얘. 상일 선배 무슨 일인지 몰라도 한동안 어두운 분위기였는데 너 만나고 부터 좋아졌잖아. 정아. 정아. 하면서 널 부르던 모습 생각하면 부럽다 부러워!"


"고마워"


"뭐 고맙냐? 다 니가 노력했기 때문이잖아. 그럼 난 간다. 데이트 잘해"


"그래. 월요일 날 학교에서 보자"


"응"


미희가 지나가자 희정은 글도 있던 버스 카드의 뒷면을 바라보았다. 버스 카드의 뒷면에는 상일과 찍은 스티커 사진이 여러장 붙어 있었고, 희정은 그 사진들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일찍 출발한 탓에 약속 장소인 공원의 벤치에 30분이나 빨리 도착했다. 사실 이것도 오는 도중 버스가 고장을 일으키는 바람에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고 시간을 소비해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더 빨리 왔을 것이다.


"어?"


약속 장소인 벤치에 앉으려던 희정은 책 같은 것이 한 권 놓여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누가 놔두고 간건가?"


희정은 책을 집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책이 아니라 일기장이었다. 호기심에 안을 들어다보니 처음의 두장과 마지막의 두장에 글이 적혀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백지였다. 희정은 시간도 남았고 궁금하기도 하여 첫 장에 적힌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그를 알게된 것은 언제나 그가 내가 일하던 커피솝에 찾아 왔기 때문입니다. 처음 그는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혼자서 쓸쓸히 찾아와 커피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는 혼자였습니다. 그는 때론 사진을 들고와 보기도 하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난 그의 행복한 표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그런 슬픈 표정에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그래서 난 그의 행복한 표정을 되찾아 주기 위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그는 그런 나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전 그런 그를 이해하며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커피숍에 찾아왔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그는 나에게 조금씩 마음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전에 함께 왔었던 여자분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난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가 예전의 행복해 하던 모습을 조금식 찾아가는 것에 대해 즐거웠으니까요. 그러다 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를 사랑하게 되어버린거죠.


다행이 그는 나의 사랑도 받아주었습니다. 나를 사랑해준 것이죠. 허나 그는 나의 이름을 단 한번도 부럴주지 않았습니다. 단지 [아가]라는 것으로 절 불러주었죠. 처음에는 그것이 더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다정히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걸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에게 내 이름을 불러 달라고 얘길 했죠. 내가 그렇게 부탁을 하는데도 그는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미안하다는 말로 나의 부탁을 거절한거죠.


결국 전 화가 나서 그를 뒤로한채 마구 뛰었습니다. 혹시 이러면 그가 날 불러주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난 그가 너무 야속해서 달리던 발을 멈추고는 그를 돌아보았습니다.


순간 난 그의 놀라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가다 멈춰선 곳이 바로 차도의 한가운데였으니까요. 그리고 난 순간적인 충격에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때는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내 주위에는 부모님들이 하염없이 울고 계셨고 그도 옆에서 죄인처럼 서서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난 그를 불러보러 했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꾸만 잠이 와서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내 몸을 흔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난 눈을 뜨려고 했지만 감기는 눈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도 사랑하던 그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저 암흑만이 내게 남아 있을 뿐이죠. 그리고 난 영원히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난 슬프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눈이 감길 무렵, 암흑이 나를 뒤덮는 순간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그가...


두 장의 글을 읽은 희정의 눈을 불게 충열되어 있었다. 일기라고 하기에는 가슴이 뭉클하게 하는 그런 글이었다. 희정은 뒷부분에 있는 글도 궁금해졌고, 바로 책장을 넘겨 뒷부분의 처음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헌데 뒷부분은 그녀가 쓴 글이 아니었다. 바로 그란 인물이 쓴 것이다.


신은 날 두분이나 버리셨습니다. 내가 전생에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일까요? 신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두번식이나 거두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처음 내가 사랑한 그녀는 아주 맑은 눈과 순수한 감성을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었고, 나 또한 그녀만을 사랑하며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늦게 그녀와 시간을 보내다 헤어질 때의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그녀는 내가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것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난 그녀의 집 앞에서 조금 떨어진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까지 그녀를 바래다 주었습니다. 난 그녀의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해 주고는 건널목을 건너가는 그녀의 보았습니다. 그녀는 비가 오니 뛰어서 건널목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차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난 그녀에게 차가 온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차가 온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헌데 빗소리 때문인지 그녀는 내가 부르는 소리만 듣고 차가 온다는 얘기를 못 들었나봅니다. 그녀는 갑자기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죠. 하지만 그게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내가 차가 온다는 말을 다시 하기도 전에 그 차는 그녀를 덮친 것이었습니다. 모든 건 나의 잘못이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부르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그냥 건널목을 건넜을 것이고 그녀가 하늘나라로 가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그 후로 난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포기하고 살 정도였죠. 전 그녀와 가던 학교 앞 커피숍에 매일 갔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앉았던 자리에 앉아 그녀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했습니다. 그때, 전 도 다른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그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예전에 나의 행복한 모습이 좋았다면서 저에게 신경을 써주고는 했습니다. 


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에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헌데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따듯하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까지 해 주었죠. 전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습니다. 내가 이름을 부르면 그녀도 하늘 나라로 갈지 모른다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미안하다고만 말할 뿐이었죠.


헌데 이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화가 난 거죠. 그녀는 나를 뒤로한 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난 그녀에게 미안해 불러 세우려 했습니다. 헌데 그녀가 달려간 곳이 차도였씁니다. 그리고 차 한대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본 것입니다. 난 그 때문에 그녀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지난번과 같은 일이 생길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결국 난 나를 바라보다 목숨을 잃는 것을 두번째 보게 된 것입니다.


병원에서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정말로 하늘 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전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그녀는 언제나 하늘 나라로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뭘 그렇게 읽어? 눈물까지 흘리며"


그 글을 다 읽었을때 어느새 왔는지 상일이가 손수건을 희정에게 내밀며 말을 건냈다.


"언제 왔어요?"


희정은 일기장을 옆에다 놓고는 상일이가 준 손수건을 받아 눈물을 닦았다.


"조금 전에... 근데 우리 정아 책도 보면서 눈물도 다 흘리고 의외인데?"


"책 아니에요. 한번 읽어 보실래요. 얼마나 슬픈 글인데요"


희정은 옆에 두었던 일기장을 집어 상일에게 주려 했다.


"어?"


헌데 방금 놓아둔 일기장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흘렸나?"


희정은 벤치에서 일어나 벤치의 밑을 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일기장은 보이지 않았따.


"왜? 없어?"


"예. 방금 있었는데..."


"중요한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럼 가자"


상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희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예"


희정은 살며시 주위를 둘러보며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 일기장이 보이지 않자 상일에게 팔장을 끼며 걷기 시작했다.


"선배. 근데 언제까지 정아라고 부르실거에요. 전 희정이라구요"


"왜? 정아란 이름이 더 좋게 들리지 않니? 난 계속 정아라고 부를텐데"


"그래도..."


"다음에 불러줄께. 자 가자 정아야"


"예. 선배..."


희정은 대답과 함께 살며시 뒤돌아 벤치를 바라보았다. 벤치에는 여전히 일기장이 보이지 않은 채 뜻 모를 여운만이 감돌 뿐이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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